마음
제가 대학시절 미국 남부를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때는 화씨 100도를 넘나드는 아주 무더운 여름이었고,
저는 루이지애나주의 어느 외진 시골길을 차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에어콘 없이는 도저히 차안에 있을 수 없는 찌는 듯한 날씨 였기 때문에...
저는 에어콘을 최대한 올리고, 음악을 크게 틀고 미국의 시골길을 음미하면서 신나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어렸을때 부르던 몇 않되는 팝송 중에 'Cotton field'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그곳이구나 하면서, 지평선 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목화밭 사이로 나 있는, 포장도 제대로
않된 1차선길을 먼지를 내며 달리고 있을때 였습니다.
"...흠... 이게 무슨 냄새지?"... "무슨 타는 냄새 아닌가?" 하는 찰나에 차의 온도계는
급상승하였고...앞에서 연기가 서서히 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당황한 나머지 급하게 차를 길옆으로 세우고, 시동을 ?습니다.
차에서 내리고 앞에 본네뜨를 여는 순간, 타는 듯한 냄새와 함께 엔진에서 열이 확오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셀폰도 없었고, 더구나 아주 외진 시골이었기 때문에 오고가는 차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있다한들 이 찌는 듯한 더위에 여행객인 듯 보이는 동양인 한명을 위해 차를 세우고
나와서 도와준다는 것은, 서울에서 나서 자란 저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기대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경찰차라도 지나가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을 하며, 망연자실 아무손도 못쓰고 단지 연기가
피어오르는 엔진만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미국이라는 이 넓은 곳에서 나 홀로... 사방을 보아도 지나가는 차라곤 볼 수 없고... 이대로
아무도 않오면, 끝이 않보이는 이곳을 걸어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러다 '해'라도 지면...
깜깜한 곳에서 혼자 어떻게 버티나?... 죽음의 공포까지 밀려오며... 속으로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을때...
언제 왔는지 아주 낡은 트럭이 저를 지나쳐 달리고 있었습니다.
미쳐 도움에 손짓도 못했는데, 벌써 저만치 멀어져 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차를 세우고, 후진해서 내쪽으로 오고 있는것이었습니다.
너무 외진곳이다 보니, 사실 좀 겁이 낫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헤진 챙모자에 머리는 길게 늘어뜨리고 거의 다 떨어진 청바지에 위에는
요란한 그림이 그려져있는 하얀 민소매만 입은 깡마른 백인청년이 차에서 내려 내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의 팔에는 문신이 있었고, 손은 뒷짐진체 천천히 내게로 걸어오는데...
더위는 온데간데 없이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이 저는 어름처럼 굳어서 그에게 잔뜩 경개를 하는
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May I help you?"
멍하니 서있는 저를 옆으로 하고, 그는 연기나는 엔진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자기 민소매 런닝을 벗어 손에 감고 뜨거워진 두껑들을 열어보더니...
자기차에 가서는 자기가 먹던 생수통을 들고와서 그곳에 다 들어부었습니다.
그러더니 이걸로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곤 황급히 떠났습니다.
그가 떠나기가 무섭게 이제는 반대편에서 또 다른 차가 서더니, 이번에는 흑인노인이 차에서
내려 내게 다가왔습니다.
그러고는 아까 그 백인청년과 같이, 차를 흩어보더니, 자기 차에 있는 아이스박스를 들고와서는
그안에 어름과 물을 같은곳에 다 넣었습니다.
그러는동안에 어느새 차 몇대가 더 왔고, 다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게로 왔습니다.
"May I help you?"
갑자기 일어난 일들에 말문이 막혀있는 저를 보고, 처음 만난듯한 그들끼리 서로 얘기하고는
각자 차안에서 생수통을 들고 왔습니다.
그러는동안 아까 그 청년이 물과 냉각수같이 보이는 병을 잔뜩 들고왔고, 넘치도록 그곳에
들어부었습니다.
그러면서 차에 온도가 내려갈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가면 시내까지는 갈 수 있을꺼라고
하면서 가지고 온 생수통을 내 차안에 넣어주고 떠났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돈을 좀 주려고 내밀었지만... 그는 웃으며 "No, Thanks!"라고 하였고,
부끄러워진 제손은 다시 주머니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서있던 다른차들은 어느새 온데간데 없이 떠나고, 감사하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그들은 한치의 보상도 없이 남을 돕고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10여년 후...
저희 팀에는 저와 같이 일하는 디자이너가 두명이 있습니다.
항상 치마만 입는 Stephanie...
항상 바지만 입는 Lori...
사실 같은 팀이라고 해도, 각자 맡은 프로젝트들이 틀리기 때문에 서로 도와서 할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서로 바쁜 일정 속에서 타이트하게 스케줄이 짜여있기 때문에 일과시간에 집중하지 않으면
제때 퇴근하지 못할 수 도 있습니다.
출퇴근 시간은 칼같이 지키는 이곳 사람들인 만큼, 근무시간에는 최대한 집중을 합니다.
그런데 그 바쁜 일정 속에서도 제가 뭔가를 물어보거나, 도움을 청하면 자신들의 하던일을 모두
중단하고 제 일을 먼저 해결해 줍니다.
자기가 모르는것은 직접 가서 물어오고, 때로는 제 대신 가서 부탁도 합니다.
어디에 가면 누가 있으니까 가서 물어보라든가... 아니면 어디가면 뭐가 있다든가 하면 될것을
직접가서 찾아주고 보여주고 하는 모습에, 처음에는 내가 외국인이니까 그렇게 하는거겠지 했는데...
그게 시간이 흐른다고 변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참 특별한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네? 하는 생각도 잠시...
우리팀 뿐만 아니라, 회사 어디에 가든 누구나 다 그렇게 마치, 못 도와줘서 안달인 사람들처럼
서로 도우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지금 그 팔에 문신했던 백인청년은 뭘하고 있을까?...
그 흑인노인은?... 그리고 나중에 도우러 차를 세웠던 사람들은...
이름도 모르고 이제는 얼굴도 가물가물한데...
어제 점심때 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일 수 도 있을텐데..."
...
열일 제쳐두고 남을 위해 돕는 이곳 미국 사람들을 보며,
혹시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의 저력이 이곳 작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10여년전 그때 그 도움의 손길들을 가슴 깊이 기억하며 미국이라는 나라를 생각했고,
지금 미국에서 디자인하며 하나씩 감사의 보답을 하고있습니다.
지금 나의 친절이 상대방에게 이어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어질때...
그 끈은 다시 내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진정 내가 하는 디자인도 마음에서 시작한다면, 그 마음 부터 열고 베풀어야 되겠습니다.
디자인이란 내 개인을 위한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오늘도 저는 Stephanie와 Lori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May I help you?"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