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人事)
내 머그잔에서 피어오르는 모락모락 뜨거운 커피향을 음미합니다.
"음... 좋군!... 참 좋은 아침이야!"
Good morning Steph,
Good morning Lori,
Good morning Sharon,
Good morning Marvette,
Good morning Connie,
Good morning Jason,
Good morning Eddie,
Good morning Tenya,
Good morning Beth,
Good morning Gayle,
Good morning Stacie,
Good morning cheryl,
Good morning Sherry,
Good morning Mike
...
여지없이 상대방도 반갑게 답례를 합니다.
Good morning, zuno...
Good morning, zuno...
오늘도 나의 하루는 Design Department의 모든 디자이너 및 직원들과의 인사로 시작합니다.
한국에서의 오랜버릇이 늦게자고, 늦게 일어났던 터라, 미국에서도 새벽2시쯤 자고,
8시에 일어나서 회사에 오면 9시.대부분의 직원들이 8시에 출근하고 5시에 퇴근하는데 반해,
저는 유독 9시 출근 6시 퇴근을 고집합니다.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해온 내 생활패턴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숨은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에 온지 1년 4개월, 자리잡고 준비작업하고 본격적으로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한것은 1년남짓.
한국사람은 커녕, 동양인 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 처음 적응하기란 그리 쉬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텃새도 있을터이고,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라지 않은 다음에야 언어도 그렇고...
각오하긴 했지만 진실되게 그들의 문화와 그들의 생각을 알기에는 다소 길고 험난한 길이
예상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다행스러웠던 것은, 미국인들의 인사성(人事性)이었습니다.
진실이건 겉치례건 간에 미국인들은 버릇처럼 인사를 합니다. 길에서건 화장실에서건 알건
모르건 하물며 5분전에 인사했어도 또 지나가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인사말도 다양해서, Good Morning 부터 시작해서 Good afternoon,
Good evening, Good night까지 시간에 따라 다른 인사가 있는 반면 Hi, Hey, How are you?,
How are you doing?, 같이 일반적인 안부를 묻는 인사와 Are you hanging in there?
How's everything? 등 조금은 구체적인 안부인사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오죽하면 영화, "Before Sunset"의 대화중에 여주인공인 Julie Delpy(극중 프랑스인)가
뉴욕에서 살아왔던 얘기를 하는중에도 미국인들의 그 유난한 인사습관을 꼬집었을까요?
유럽인들에게 조차도 미국인들의 인사성은 유별나게 보이나 봅니다.
하물며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자란 저로서는 얼마나 이질적인 것이었을까요?
대학생활을 미국에서 보내긴 했어도, 1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맞닥들인 현실들은 다소
어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제게 있어서는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고 그들을
알 수 있는 통로(通路)라고 생각했습니다.
"통로"...
그 통로를 통해 그들 안으로 들어가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마침내 그들의 문화속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그들의 저력(底力)을 알수있다면, 당연히 그들의 문화에 동참하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인사부터 하자..."
그래서 시작한게, 아침인사.
모든 직원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인사하기.
마치 교단에서 출석을 부르듯... (불현듯 그때가 그리워지요...^L^)
보통 아침에 출근하면 한 30분정도는 이것저것 분주합니다. 옆자리 동료들과 어제 있었던 얘기며,
컴퓨터 켜고, 커피 가져오고 등등...
그래서 8시 출근해서 9시쯤 되어서야 모두 평온을 찾고 업무에 열중합니다.
그때 모두 제자리를 잡았을때 저는 제 머그잔에 따뜻한 커피를 들고, 한바퀴 순찰(?) 합니다.
그렇게 1년간...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그들은 제 이름을 기억하려 했고,
제가 먼저 인사 하였을때, 그들은 제게 먼저 인사할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제게 있어 인사(人事)는 제가 그들에게 주는 '아침선물' 이었고, 그들에게 있어 제 인사는
아침을 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제가 아파서 결근을 하는 날이면 모두가 알고, 다음날 아침에 안부를 물으러 옵니다.
김춘수 시인의 시(詩),'꽃'에서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싯구가 있듯이...
매일 아침 그들은 저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들의 패턴을 조정합니다.
저는 이제 그들의 아침의 한부분이 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의 문화속에 한명의 한국인이 자리 잡았습니다.
아니, 그들에게는 자신들과 똑같은 한명의 미국인으로 받아들였겠지요.
이제는, 제가 그들에게 아침의 문을 열었듯이, 그들도 저녁 5시 퇴근시, 우리팀까지 찾아와서
일에 열중하는 제게 인사(人事)하며 그들의 하루 업무를 마감합니다.
디자인은 이렇게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면서 시작됩니다.
클라이언트의 그 미묘한 생각과 느낌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디자인을 시작할 수 없듯이,
그 문화를 지배할 수 있을때 비로소 디자인은 탄생합니다.
통로를 통해 그들안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느낌을 공유하고,
나또한 그들과 같은 동등한 문화속에서 그 문화를 영위할때 비로소 그 문화를 이끌 수 있는 키를
발견하고, 그 키(key)로 마침내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움직이는 디자인을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주위의 동료부터 가깝게는 가족에게부터, 반가운 아침인사로 나의 문을 열어 봄이 어떨까요?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움직일 따뜻한 진심어린 인사부터 오늘 시작해 봄이 어떨까요?
오늘아침에도 저는 제 머그컵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