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所藏)
2004년 5월6일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소.
"9천만달러!"... "9천 1백만!"... "9천 2백만!"...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카운트 하겠습니다." "셋", "둘"...
"9천 3백만!"...
"네, 9천 3백만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카운트 하겠습니다."
"셋", "둘", "하나"... "땅, 땅, 땅".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은 낙찰되었습니다."
"낙찰가는 9천 3백만 달러입니다."
여기저기서 박수소리와 웅성거림이 뒤엉키고 이 뉴스는
세계를 향해 퍼져나가도 있었습니다.
'파이프를 든 소년'은 피카소가 파리에 정착한 직후인 24살 때 그린 명작(名作)으로 1950년
주영 미국 대사였던 존 휘트니가 3만달러에 구입했고, 그의 사후인 82년 부인 베시가 세운
자선단체인 그린하우스재단에서 소장(所藏)해 왔습니다.
낙찰가 9천 3백만 달러, 여기다 경매 수수료 포함 총 1억 416만 8천달러.
우리돈으로는 1200억원.
이는 지난 1990년 뉴욕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의사 가셰의 초상’이 세운 경매사상 최고가인
8천 2백 5십만달러를 훨씬 뛰어넘는 기록적인 낙찰가 입니다.
이는 서울의 타워펠리스가 평균 15억원 전후라고 봤을 때 그림 한점이 타워펠리스의 80세대를
분양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불과 50년 사이에 3400배이상이 오른셈 인, 이 ‘파이프를 든 소년’의 가치(價値)는 실로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24살이면 대학교를 갖 졸업했거나 남자는 군대 아니면 제대후 복학한 상태이겠군요.
피카소가 그 나이에 그린 그림 한점이 오늘날 이토록 세상에서 주목을 받을지는 아마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그 그림 한점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왜 그토록 그 작품을 소장(所藏)하기 위해, 그 많은 돈을 들여 사들였을까요?
인터넷만 켜면 금방 찾을 수 있는 그림일 뿐인데… 어찌하여 그 작품을 손에 넣고
소장(所藏)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었을까요?
여기서 우리가 주의깊게 살펴봐야 할 부분은 인간의 본성(本性)입니다.
사람은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그리고 만지는 오감(五感)이 있습니다.
이 오감을 만족하기 위해, 우리 인간들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전해 나갑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디지털 시대도 결국은 완전한 아날로그의 실현을 위해 진행되어 가고 있는
과정(過程)입니다.
완전한 아날로그란, 우리의 오감을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사랑하는
연인이 만나서 손을 잡고, 서로 바라보며, 상대의 체취를 느끼면서, 서로의 얘기를 듣고 또
맛있는 것을 먹는 것입니다.
디지털에서는 단지 비슷하게 아니면 대리만족 할 뿐이지요.
그러나 전화가 화상전화로 이어지고, 냄새나는 TV가 등장하는 것은 인간이 끊임없이 디지털을
통해 완전한 아날로그의 실현을 위해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그 명화(名畵)를 그냥 보는 것 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행을 가고 그곳에서 원하던 것을 찾고 직접 보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직접 본다는 것에 가치(價値), 직접 만난다는 것에 대한 가치(價値), 직접 만져본다는 것에 대한
가치(價値)… 하지만 직접 소유(所有)하고 있다는 것의 가치(價値) 만큼이나 우리의 본성을
만족하는 것은 없을 것 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데이트로 끝나지 않고, 결혼해서 같이 살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을 바라보면
인간의 본성이 그들을 이끄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즉 인간의 본성은 오감 만족 추구이며, 이 오감 만족 추구의 바탕에는 사랑이 깔려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힘이 인간의 본성을 아름답게 유지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저는 장난감을 모으는 것을 취미로 갖고있습니다.
그것들을 여러경로로 하나둘씩 모을 때, 저는 과연 이것이 갖고 있을 가치가 있나
즉 소장가치(所藏 價値)가 있나를 매우 신중하게 생각합니다.
그저 장난감이 좋아 하나 둘 모으던 것이 종류와 가지수가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카테고리를
분류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그 카테고리에서 최고의 작품(作品)은 어떤것인가를 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제는 방안 가득도 모자라, 그중 정리해서 박스에 넣고, 또 방에 있는 것 중에 또 골라서
다시 창고에 정리하기를 수십 차례, 마치 무슨 토너먼트 경기를 하듯 계속 명품 중에 명품(名品)을
찾아 가는 저를 보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에 대한 열정(熱情)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는 단지 장난감이라서 좋아하고 모으는 것이 아니고, 그 장난감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나의 비젼을 함께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장난감은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던 시대가 점점 어른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릴적 동심(童心)으로 돌아갈 수 있는 통로(通路)가 바로 장난감 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만화 주인공의 발차기를 따라하고, 여주인공과의 아주 평범한 로맨스에도
흥분하며 눈을 가리던, 마징가Z와 태권V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를 놓고 친구들과 격론을 벌이기도
했었지요…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는 없지만, 그 때의 내가 사랑했던 것들을 다시 내가 찾을 수 있다면…
그 주인공이 살아서 다시 내게로 날아와 준다면…
아마 어른들은 잊혀졌던 동심(童心)을 되찾을 수 있게 될것입니다. 바로 장난감을 통해서 말이지요.
그리고 장난감은 세계 만국 공용어(公用語)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어린이가 있는 곳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그들을 위한 장난감이 있고,
그것은 그들의 문화를 대변할 뿐만 아니라, 어떤 나라의 어린이들이 와도 아무 불편없이 그걸
갖고 놀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장난감은 남녀노소, 그리고 인종을 초월할 수 있는 매개체(媒介體)라고 할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런데 장난감을 모으다 보니까, 동호인(同好人)들을 만나게 되고 자연히 그들과의 커뮤니티가
형성이 되어, 서로 정보를 공유하게 되면서 세계의 장난감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되었는데,
디자이너인 저로서는 명품(名品)의 기준을 원본(애니메이션의 경우 원화)과의 격차범위에 무게를
두는 반면, 애니의 캐릭터가 아닌 밀리터리(군대) 피규어 매니아들은 그 기준을 역사적 고증을
통한 정교함에 두고 있습니다.
공통점은 얼마나 실제(원화)와 닮았는가가 기준이고 보면, 앞에서 언급한 완전한 아날로그로의
추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가상의 공간에서만 존재했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을 실제의 형태로, 공기를 사이에 두고
아날로그의 공간에서 나와 마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간의 본성인 오감의 만족, 즉 완전한 아날로그의 완성을 위해 소유(所有)하고자 하는
우리 인간들에게 남녀노소 그리고 인종을 초월(超越)할 수 있는 장난감을 통해 시공간을 넘나들수
있는 통로(通路)를 만들어 준다는 것은, 인류문화에 있어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디자이너로서 장난감 디자인이 한국의 디자인을 세계에 펼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단적인 예로, 세계 장난감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과 일본의 경우, 해마다 엄청난 양의
애니메이션과 영화가 쏟아지고, 자연스럽게 캐릭터 산업으로 이어짐과 동시에 장난감으로 출시됩니다.
유럽에서도 범접할 수 없는 수준으로 그 세력은 엄청납니다.
그런 세계 장난감 시장에 얼마전 일대 사건 하나가 홍콩에서 일어났습니다.
'마이클 라우’라고 하는 한 젊은 디자이너가 만든 장난감(피규어)이 세계에 시선을 끌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홍콩이라는 작은곳에서…
그의 장난감 디자인은 지금까지 보지못했던 아주 신선한 디자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어떤 디자인도 미국과 일본의 아류(亞流)에만 머무를 수 밖에 없다는 편견을 일시에 불식시키는
일대의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의 캐릭터가 아니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실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장난감 디자인을 통해 ‘홍콩디자인’이라는 말이 탄생(誕生)하였고, 미국, 일본에 이어
홍콩이 바야흐로 장난감 디자인의 흐름과 맥을 잇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나온 걸출한 에릭소 등의 디자이너가 나왔지만, 이미 그의 아류일 수 밖에 없음을
자인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디자이너가 한 나라의 디자인을 창출(創出)할 수 있다는 것은 아마 그것이 장난감
디자인으로부터 비롯됐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장난감이야 말로 남녀노소 인종을 초월하여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의 메개체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소장(所藏)한다는 것은 홍콩디자인을 소장하는 것이기에 그것에는 그만한
가치(價値)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현재 그의 작품은 매우 귀해서 구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구한다고 해도 값이 워낙 고가(高價)라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워낙 소량 제작을 하다보니, 제작하기도 전에 미리 선금을 주고 기다리는 실정입니다.
소장(所藏)한다는 것, 그것은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며, 인간 본성의 실현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바로‘가치'를 소유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완전한 아날로그의 실현, 인간본성인 오감만족의 실현…
이것은 진실된 내 내면의 사랑을 통해 표면화 되고, 그 내 내면의 가치가 승화됨으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끊임없이 장난감 중 명품을 찾아나서듯, 디자이너로서 내 속에 있는 나의 디자인 명품(名品)의
가치를 세계의 클라이언트들이 찾아줄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를 최고의 가치(價値)있는 디자이너로
스스로를 디자인해야 할것입니다.
내게서 나온 나의 디자인을 그들이 찾고 소장하고 싶도록 우리는 우리디자인에 사랑을 넣어야
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실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한계는 없습니다.
아무도 마이클라우라는 단 한명의 장난감 디자이너(또는 피규어 원형사)를 통해 미국, 일본을
넘보는 홍콩디자인이 탄생할꺼 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여러분 입니다.
다음의 한국디자인을 세계에 드높일 사람은…
오늘도 저는 장난감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그 디자인의 가치(價値)를 소장(所藏)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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