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秘密)
1988년 여름, 미국유학 중에 잠시 LA에 있는 디즈니랜드를 간적이 있었습니다.
관광을 마치고, 기념이 될만한 걸 찾다가 작은 도널드덕 태엽 장난감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걸 집에 가져와서는 틈만 나면 태엽을 감아서 책상 위에 놓고는 뒤뚱뒤뚱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매우 기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과제가 많고 학교공부가 힘들 때면, 나를 즐겁게 해주던 고마운 친구였지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같이 유학하던 다른 친구가 그 장난감을 달라고 때를 쓰다 끝내는
차로 7시간 거리의 디즈니랜드에 가서 똑 같은 걸 사가지고 와서, 좋아하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그렇게 커서 장난감과의 인연을 다시 맺은 것이 이제는 제 방을 가득 빼곡히 빙 두루고도 모자랄
지경이 되었지요.
오히려 어렸을 때 이렇게 장난감을 좋아했던가 싶을 정도로 이제는 제게 있어 장난감은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답니다.
그 종류도 다양해서, 액션피규어(Action Figure) 라고도 하는 12인치, 6인치 인형과 초합금
로보트,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는 토이, 소프비(SoftVinyl), 프라모델(Plastic Model),
스테츄(Statue)계열의 레진, 가샤폰, 돌(Doll)계열의 블라이스, 구체관절인형, 옛날 틴토이(TinToy),
브리키, 레고(LEGO), 플레이모빌(PlayMobil), 큐브릭(Kubrick) 등등 이루 열거하기에도
힘들 정도로 장난감의 종류는 실로 방대합니다.
그 중에서 얼마 전부터 저를 사로잡은 장난감이 있는데, 그게 큐브릭입니다.
큐브릭(Kubrick)은 큐브(Cube)와 브릭(Brick)의 합성어로 일본 메디콤토이(MedicomToy) 社의
제품을 말합니다. 큐브는 입방체, 정육면체 그리고 브릭은 벽돌 등의 사전적 뜻이 있지요.
이 와 비슷한 류(類)로 우리가 잘 아는 레고와 플레이모빌이 있는데, 레고(LEGO)가 블록쌓기로
시작해서 집도 짓고 배도 만들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의 형태의 필요성을 느끼고 조그만 레고
인형을 만들게 되었다면, 플레이모빌(PlayMobil)은 인형모형을 만들면서 그들의 배경이 되는 집과
자동차등을 만들게 되었고, 큐브릭은 그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그들의 장점을 잘 살려
인형모형만 출시하는데, 레고보다는 다소커서 디테일을 살렸고, 플레이모빌과는 달리 집이나 배등
큰 배경물은 출시하지 않고, 유명 캐릭터로 한정해서 (다소 로열티는 지불하겠지만) 좀더 친근감을
주어 짧은 시간에 빠른 시장 점유를 이루었습니다.
이 런 여세를 몰아 메디콤토이社에서는 곰모양의 베어브릭(Be@rbrick)과 이어서 개모양의
바우브릭(B@wbrick) 등을 계속 출시했는데, 특히 베어브릭은 큐브릭과는 달리, 로열티 지불
없이 순수 곰모양의 일정한 모형 위에 자체 디자인을 통해, 캐릭터가 아니어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메디콤토이社의 큐브릭과 베어브릭이 일본과 홍콩 그리고 미국등지의
토이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형태와 디자인뿐만 아니라, 그곳에 숨어있는 놀라운
마케팅(Marketing)의 개가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 마케팅기법을 메디콤토이社에서 세계최초로 한 것이다라고는 엄밀하게 말할 수 없지만,
그 마케팅을 통해 장난감 마니아(Mania)들 즉 수집광들로 하여금 다음 시리즈 출시를 목매어
기다리게 할뿐 만 아니라, 선주문을 하고 때로는 딜러(Dealer)들에게만 파는 24개들이
한 카톤(Carton)이나 4개의 카톤이 들어있는 한 팩을 한꺼번에 주문해서 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새 시리즈가 출시되면 모두 기쁘면서도 인상을 찌프립니다. “또 나왔어?” 하면서
각자 은행의 잔고를 살펴봅니다. 이제는 안 사고는 못 베기기 때문이지요.
작년 이맘때 압구정동에 제가 자주 들르는 장난감가게가 있었습니다. 그곳 주인아저씨가 하신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큐브릭 시작하시려면, 고급외제 세단 한대나 지방의 아파트 한 채 날릴 생각 하시고 시작하세요".
하시면서 덧붙여 “지금 홍콩에서는 주식보다 낫다고 합니다. 값이 내려가질 않거든요!”
정말 병 주고 약주는 말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열광하게 하는 걸까요?
높이 6cm에 불과한 이 작은 인형모형 장난감에 과연 어떠한 비밀(秘密)이 숨겨져 있는 걸까요?
실로 흥미진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또한 이 매력에 이끌려 오늘도 큐브릭 동호회사이트나 메디콤토이社 사이트 또는
일본경매사이트를 살펴봅니다.
출시예정 제품이 출시되었는지?, 그리고 시크릿(Secret)이 무엇인지?…
시크릿(Secret) ; 비밀(秘密)…
메디콤토이社에서는 큐브릭을 출시할 때에 낱개로 판매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딜러 최소 단위인,
큐브릭 24개들이 한 카톤(Carton)을 장난감가게나 쇼핑몰 운영자인 딜러들에게 판매합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 한 카톤에 들어있는 새로 출시된 큐브릭의 시리즈제품의 수가 일정치가
않고 각각 확률을 주었다는 겁니다.
즉, 새로 출시된 큐브릭 장난감이 7개 캐릭터가 한 시리즈를 이룬다고 할 때, 딜러에게 주어지는
24개들이 한 카톤 안에는, 6개가 들어있는 즉 24분의6인 캐릭터도 있고, 24분의 5, 24분의 4,
24분의 3, 24분의 2 그리고 가장 확률이 적은 시크릿(Secreit), 일명 비밀(秘密)인 24분의 1이
있어서, 한 카톤 안에 24개의 미개봉 큐브릭 낱개박스를 다 개봉해서 시크릿인 24분의 1 하나를
찾을 때 까지는 완전한 한 시리즈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캐릭터의 시리즈 중 시크릿의 형태는 카톤이나 박스 어디에도 인쇄되어 있지 않아서, 개봉해
봐야만 비로소 시크릿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마치 “Surprise!” 하며 생일날 놀래키는
것처럼 한 카톤 안에서 1개의 시크릿을 찾는 것은 하나의 이벤트며 기쁨을 가져 다 주기도 합니다.
자연히 딜러인 장난감가게 주인만 시크릿을 포함한 온전한 한 시리즈를 갖을 수 있고 팔지않아서,
가게에 온 손님들은 진열장에 비매품이라는 문구만 물끄러미 보고 돌아가야 했던 것 입니다.
급기야 그 시크릿을 얻기 위해서, 딜러처럼 한 카톤을 사는 장난감 수집가들이 생겨났고, 이어서
딜러들은 소장하고있던 시크릿을 내다 팔게 되었지요. 자연 고가에 거래 되었구요.
그런데 처음에는 24분의 1이 시크릿이었던 것이 점점 많은 시리즈가 출시 되면서, 48분의 1,
그리고 인기캐릭터 시리즈에는 무려 96분의 1의 시크릿이 출시되기에 이릅니다.
그야말로 4개의 카톤을 다 개봉해야 한 개의 시크릿을 찾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죠.
만약 어떤 장난감가게에서 미개봉 큐브릭 뽑기를 해서, 96분의 1 시크릿을 뽑았다면, 그 사람은
1개의 값으로 96개 이상의 값어치를 뽑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이렇게 제품을 출시하면서 각각에 확률을 준 마케팅이
정작 메디콤토이(MedicomToy)社에게는 어떠한 이득이 있었을까요?
시크릿이 24분의 1이든, 96분의 1이든 한 카톤의 가격은 일정하게 24개 큐브릭의 값일 뿐이지만,
정작 메디콤토이社에서 노린 것은 한제품의 가격이 아니라, 제품의 붐 조성 이었던 것입니다.
이 구하기 힘든 시크릿으로 인하여, 장난감 수집가들의 니즈(Needs)가 늘어갔고, 인터넷 경매나
동호회 장터에서 공공연히 출시가격에 5~10배 가량 때로는 그 이상 비싸게 거래됨으로 인해, 막
출시된 제품을 빠르게 구입하는 것이 다소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인식이 되었고, 이로 인해
출시와 동시에 때로는 선주문을 통해 이미 매진이 되는 사례를 빚게 된 것 입니다.
어느 하나의 제품을 출시하면서, 그 하나의 값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품이 가져올 파장을
예측하고 그 구매자들의 정서를 꽤 뚫고 시크릿(Secret)이라는 그야말로 비밀(秘密)병기를 내세워
토이(Toy)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는 것 입니다.
베어브릭의 경우는 한술 더 떠 96분의 1의 2배인, 192분의 1까지 출시되어 24개들이 한 카톤을
무려 8개를 다 개봉해야 단 한 개의 시크릿을 얻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 가치는 얼마나 클까요?
사 실 베어브릭의 경우는 똑 같은 재질, 똑 같은 크기에 그림만 달리해서 확률만 적게 준 것 뿐인데,
수집가의 심리를 최대한 이용해서 남이 갖지 않은 것을 내가 갖고 있다는 극히 평범한 원리를 장난감
시장에 적용해서 다른 어떤 제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마케팅으로 성공한 것입니다.
더 더욱 놀라운 것은 예를 들어 디즈니캐릭터 시리즈1에 미키(흑백)(6/24), 미니(흑백)(5/24),
피노키오(3/24), 야수(3/24), 지니(3/24), 산타복 크리스마스악몽의 잭(2/24), 토이스토리의
눈 셋 달린 우주인(2/24) 그리고 시크릿으로 램프의 지니(1/48)를 출시하고, 이어서 시리즈2에는
도날드덕(흑백)(6/24), 구피(흑백)(5/24), 피노키오의 귀뚜라미(3/24), 101 달마시안의
악녀(3/24), 백설공주(3/24), 토이스토리의 꼬마(2/24), 뼈 루돌프(2/24) 그리고 시크릿으로는
산타복의 미키(1/48)를 출시하여, 시리즈1과 2를 계속 구입했을 경우, 미키, 미니, 도날드덕,
구피의 흑백버전이 세트가 되고, 피노키오와 귀뚜라미가 한 세트가 됩니다. 토이스토리도 그렇구요.
계속해서 시리즈가 출시되면서 흑백버전은 흑백버전대로 계속 세트를 이루고 그 외 다른 캐릭터들은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계속해서 세트를 형성하니, 시리즈 하나로 끝날 수 가 없고 시리즈를 계속
모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만화의 주인공들이 하나 둘씩 세트를 이루는 것입니다. 또한 시크릿을 통해
중요한 세트의 구성요소를 두어 시리즈2의 시크릿인 산타복장의 미키는 시리즈1의 산타복장의 잭과
세트를 이루어 시크릿이 없으면 시리즈1의 산타복장의 잭은 영원히 외톨이가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시리즈4의 시크릿은 미녀와야수의 여주인공 벨인데, 시리즈1의 야수와 뗄레야 뗄 수가 없는
커플이지요. 시크릿에 대한 예를 하나 더 들면 시리즈5의 시크릿은 램프의 쟈파입니다. 이것은
시리즈1의 시크릿인 램프의 지니와 한 세트가 되지요. 시크릿들 과도 한 세트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의 악몽 같은 팬층이 두꺼운 캐릭터는 디즈니시리즈에도 들어있지만, 따로 별개의
시리즈로도 출시가 되어서 좀더 다양하게 콜렉팅(Collecting)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있습니다.
이 뿐 아니라 Toy Fair(장난감 전람회)등에서 입장권으로 큐브릭이나 베어브릭을 사용하는가 하면,
유명 음반에 끼워 출시도 되고, 한정판(Limited)을 두어 더더욱 가치를 높이는데, 더 중요한 것은
그 한정판의 개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정판 수량 출시이후에는 그 원형 금형본을 고객들 앞에서
깨뜨리는 행사도 마케팅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한 회사의 제품을 자세히 설명하는 데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상식적으로 우리가 그 동안 접근해 왔던 제품의 가치와 판매에 대한 인식을 넘어, 눈앞에 있는
이익이 아니라, 멀리 보고 소비자의 심리를 읽는 마케팅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또 다른 새로운 마케팅 전략으로 한 발자국 씩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을 것 입니다.
실로 때로는 두렵기까지 한 그런 시장경쟁 한가운데 우리는 서 있습니다.
이런 세계의 마케팅 경쟁상황 속에서 우리 디자이너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내가 디자인하는 한 작품이 세상에 나와 좋은 평을 받는 것만으로 기쁨을 얻고 위안을 삼으십니까?
아니면 지금도 클라이언트와 끝없는 신경전으로 밤을 지새우고 계신가요?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시크릿은 무엇입니까?
디자이너로서 여러분들의 디자인에 숨겨놓은 비밀(秘密)은 무엇입니까?
그 비밀을 알기 위해 여러분들을 찾는 클라이언트는 얼마나 되나요?
이제는 여러분들만의 시크릿으로 세상에 나와야 할 때입니다.
누 구든 다 하는 그런 디자인이 아닌, 그리고 유행을 쫓는 그런 디자인이 아닌, 대세를 읽고 리드 할 수
있는 전략적 디자인 마케팅으로 여러분들만의 시크릿을 만들어 그것을 클라이언트가 기대하고 다시
찾을 수 있는 우리 디자이너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의 시크릿(Secret)을 말씀드리지요…
…비밀(秘密)입니다.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