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家業)

네! 어디가 안좋으세요?

감기 몸살인 것 같은데요.

언제부터 그러셨어요?

한 이틀 됐어요. 어제는 아파서 회사도 못 나가고...하루 쉬면 날줄 알았는데, 오늘은 콧물도 심하네요.

"아" 해보세요.
(입을 크게 벌린다)
다른데 아프신 데는 없으시구요?

기침도 조금 하구요...

웃옷을 올려보세요.
(청진기를 가슴에 댄다)
숨을 크게 쉬어 보세요.
요즘 과로 하셨나요?

네, 요즘 신경 좀 많이 썼더니...

네! 됐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독감증세군요. 따뜻한 물 자주 드시구요.
주사실에 가셔서 주사 맞으시고, 처방전대로 약은 잊지 말고 꼭 드세요.
모레 다시 오셔서 경과보고 주사 한번 더 맞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얼마 전 독감이 심하게 걸려서,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며 의사선생님과 오고 갔던 대화내용입니다.
대 화내용은 간단해 보여도 그 의사선생께서 저를 진찰하시고, 치료하시기 위해 처방을 내리시기까지는
그 동안 수많은 공부를 통해 얻으신 의학적 지식과 직접 환자를 보며 얻은 노하우와 경험 그리고
그 환자의 검진에서 내려지는 정확한 판단력이 모두 그 짧은 대화를 통해 집결되어 머리에서 분석하고
나온 결론이기에 대화의 길고 짧음을 떠나, 우리는 의사선생님를 신뢰하고 지시에 따르는 것입니다.

사실 감기는 약먹으면 일주일, 안먹으면 7일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 마저도 막상 걸리고 나면 모든 게
귀찮고 빨리 낫기를 바래 병원을 찾습니다.
하물며 아파 쓰러지거나 사고로 다쳤을 때, 우리는 나를 진찰하고 치료하는 의사선생님이 정말 가장
정확한 진단을 내리시고, 그 분야에 최고이기를 내심 바랍니다.

꽤 오래 전이지만, 제가 대학입시 재수를 할 때 였습니다.
하루는 같은 종합반 학원에서 재수를 하던 고등학교 친구 한명이 저에게 오더니, 시험지를 보여주며
싱글벙글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얼마 전에 외국어를 '영어'에서 '일어'로 바꾸었는데 '만점(滿點)'을 받았다는 겁니다.
늘 외국어 때문에 고민하던 그 친구로서는 당연한 자랑이었지만, 일점이 아쉬운 저로서는 좀 배가 아팠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입시를 볼 때는 지금처럼 '수능'이 아니고 '학력고사'라고 불렀습니다.
340점 만점에 외국어는 제2외국어 따로없이 어떤 외국어든 하나만 선택을 하면 됐었습니다.

그때까지도 가업(家業)을 잇겠다는 일념 하에 의사의 길로 매진하던 터이고, 좀더 좋은 의과대학을
가기위해 2차도 포기하고 재수를 결심한 저로서는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점수만 오르면 못할 것이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시험삼아 '일어'를 몇 달 공부하고 모의고사를 봤는데, 그만 '만점'을 받았습니다.
한두 점도 아니고, 무려 '영어'를 선택했을 때보다 10점 가까이 오른 셈인데, 그렇다면 족히 내가
원하는 의과대학은 들어갈 수 있는 점수 였습니다.
당연히 그 길로 외국어 선택을 '영어'에서 '일어'로 바꿨지요.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학원가의 열풍이었고,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너도나도 모두 일어를
선택하여, 급기야는 사회적 이슈가 되고 결국 당해 일어문제가 엄청나게 어렵게 출제되었습니다.

결국 학력고사 첫 시간 외국어시험을 망치고 나니, 줄줄이 그 여파가 다른 시험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의사의 길은 포기하게 되었고, 점수가 되는 공대로 갔지만 방황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대학 3학년이 시작되는 휴일 어느날, 우연히 TV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한국인 2세"라는 휴먼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저는 그만 화면에서 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디자이너...
일본에서 활동하는 제일교포 3세 어느 그래픽 디자이너의 이야기 였습니다.
그만 내게 잠재되어있던 디자인의 '끼'가 발동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며칠 후 대학3학년 수학여행비용을 사설 디자인학원 등록비로 쓰고 말았습니다.
그 렇게 시작한 디자인으로의 길이 우여곡절 끝에 유학의 길로 이어지고, 기초부터 배운다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미국에서 디자인을 배워나갔습니다. 하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는 '아버지'라는 단어가 있었고,
멀리 한국쪽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 짖기도 했습니다.

저 희 아버지는 평생을 의술(醫術)에 몸담으시며, 집안 전체를 의사집안으로 만드시기를 소원하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때 저희 할아버지를 여의시고 거의 독학으로 의사가 되신 분이셨기
때문에 남달리 학문에 대한 집념이 많으셨고, 늘 공부하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은 없다.
해서 안되는 것은 없다"고 하시며, 제가 미국으로 디자인을 공부하러 간다고 하였을 때는 단호하게 반대하셨고,
그때라도 다시 시작하여 의과대학에 가라고 하셨었습니다. 그런 아버지와 의사인 형과 매형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내 마음속에는 전에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디자인으로의 열정이 나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전, 굶어죽더라도 디자인을 하겠습니다."라고 하며, 그 당시 강원도 태백에서 탄광촌 광부들에게 봉사하시며,
의술을 펴시던 아버지를 찾아가 설득하기를 십여 차례...
결국 일년간만 등록금 대주시기로 하고 떠났던 유학길이었습니다.

아버지...

지금은 탄광촌에서 여생을 보내시고 이미 고인(故人)에 되신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아파서 병원에 갈때면
늘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가는 이 길이 아버지가 가신 길을 따라, 아들로서 옳게 가고있는 것일까 늘
마음속으로 되 뇌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준호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이번에 저희 프로젝트를 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희를 믿고 맡겨주시니 오히려 저희가 감사드려야죠. ^^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번 프로젝트의 예상 타겟은 어디인가요?

30대이상의 커리어우먼입니다.

그렇다면 밴치마킹을 하기에 앞서서 경쟁사는 어디인가요?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고 미국의 A사, 일본의 B사 입니다.

그럼, 한국실정에 맡는 시장공략이 관건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가지고 계신 자료들을 볼 수 있을까요?
(기존의 홍보물들을 살펴본다)
음...외국에서의 사례를 보면, 주로 브로슈어라기보다는 카달로그 성격이 강하군요!

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미 제품에 대해서는 미국이나 일본을 통해서 인지되고 있으니까 오히려
이미지성으로 접근하는 게 타겟을 공략하는데 주효할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

잘 알겠습니다. 우선 주신 자료를 검토하고 저희 자체 리서치를 한 후 디자인시안과 디자인
기획안을 제안해 드리겠습니다.
스케줄은 내일 오전까지 이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보시고 의문점이나 조정이 필요한 부분은
말씀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디자인은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다스리고 때로는 치료하는 의술(醫術)입니다.
오늘도 아버지가 그러하셨듯이, 클라이언트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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