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敬意)

저는 좋은영화들은 DVD로 소장하기를 좋아합니다.
감명 깊게 보았던 순간들을 좋은 화질과 영상으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거지요.
하지만 그것들을 다시 꺼내어 처음부터 쭉 집중해서 다시 보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이미 아는 내용에, 반전의 놀라움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고, 단지 영상미나 OST를 다시
듣고자 할때가 많습니다.
그것도 쏟아져 나오는 새영화에 밀려 소장한다는 것 외에는 더이상 내게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사실 새롭고 놀랍고 기대되는 새영화를 찾아보기에도 바쁜데 구태여 전에 봤던것을 시간을
내어서 본다는것은 왠만한 감동의 기억이 아니고서는 하기 힘든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벌써 한 20년이 지났군요. 제가 처음 그영화를 본것이...
그때는 단지 유명한 영화라는것 외에는 저를 끌 별다른 요소가 없었습니다.
특별히 제가 그 장르를 좋아했던것도 아니고, 그 영화의 배우나 감독을 좋아했던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 누구와 어디서 언제 보았는지도 잘 생각나지도 않았는데, 얼마전 청계천 고가도로
철거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황학동 벼룩시장을 갔다가 우연히 그 영화의 "Director's Cut"
DVD가 있는걸 보고 무심결에 사다놓고는 계속 책장에 진열만 해놨었습니다.

휴일인 오늘, 저녁7시쯤 갑자기 영화가 보고싶어, 영화관에 갈까했는데 딱히 보고싶은 영화가
없었습니다.
TV프로도 그렇고 해서 할수없이 선택했던 것이 이 DVD였습니다.
보기전에 나의 생각은 좋은 음악과 화려한 의상을 다시 보는것도 그리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스토리나 배우등은 너무나도 잘 알고, 음악도 대부분 귀에 익은 곡들이기 때문에, 부담없이
영화를 즐길수 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마치 나의 아까운 시간을 영화에게 크게 할애 하는양, 기대감이나 긴장감은 전혀 없이 소파에
최대한 편안히 앉아서 리모콘의 'play' 버튼을 눌렀습니다.

 

저는 영화가 끝나 앤딩자막이 오르고 영화의 마지막 타이틀 연주곡이 끝날때 까지 매우 숙연하게
소파에 앉아있었습니다.
20년...
저는 '시간의 흐름'이 내게 있어 이토록 빠르게 느껴진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마치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2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영화가 끝나는 순간에 지금의 20년후로
돌아온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영화에서는 궁정 음악장 '살리에리'가 하룻밤 사이에 들려준 이야기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내가
그전에 전혀 느끼지 못하고 보지못했던 것들이 20년이라는 세월과 함께 감동으로 내게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결코 20년전, 제가 처음 '아마데우스'를 봤을때에는 느낄수도 볼수도 없는 것이기에,
내 나이 먹음에 대한 감사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감독인 'Milos Forman'의 의도함을 완전히 느낄수는 없었겠지만, 20년전...저보다 20년
위의 어느 선배디자이너가 느꼈을 그 감동을 제가 지금 20년이 지나서야 느꼈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제가 가졌던 오만함과 자만심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말로 표현할 수없는 감동의 차이였습니다.
지식만으로는 이해하거나 표현할 수 없는 그 엄청난 차이의 느낌이었습니다.
제 스스로 같은 한영화를 통해 20년 전(前)과 후(後)의 인물이 되어 동시에 나를 바라볼수 있었습니다.

보 통 역사의 인물에 대한 영화처럼 스토리를 전개함에 있어서, 주인공인 '모짜르트'의 시각에서
스스로를 바라보지않고, 제3자인 '살리에리'의 시각에서 주인공을 바라보고, 단지 바라보는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삶을 뒤에서 조정하며 이끌어 가는 전개방식은 이 영화를 1984년 아카데미 8개
부문외에도 세계적인 많은 영화제에서 큰 영애를 주었지만, 그 보다도 감독 Milos Forman과
시나리오 작가 Peter Shaffer, 제작자 Saul Zaentz, 배우 남우주연상의 F. Murray Abraham 등의
근 20년 후의 들려주는 후일담(後日談)은 비록 그들이 나이 먹고 혹은 일선에서 은퇴한 노인들 일지라도
그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흘렸을 땀과 노고를 생각하니,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어느새 내게도 그 자리에서 영화를 관조할 수 있는 눈이 열린것이었습니다.
단지 20년전에 관객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감독이자 배우로서 영화의 전체를 바라보고 나의 지금과
대비해 그곳에서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어느새 감독이 되어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던것입니다.

천문학적인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부으면서, "과연 이 영화가 성공할까?"를 감독은 계속 되뇌였을 것입니다.
많은 스텝 및 배우들에 대한 책임감도 몰려왔을 것입니다.
고향이자 공산국가인 체코에서의 촬영에서 감당해야할 망명자로서의 비난과 제한과 중압감은 실로
무거웠을 것입니다.
미국영화를 유럽에서 올로케하면서, 헐리우드식의 대미를 요구하는 투자가들의 말도 들어야 했을것입니다.
계속해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문제들과 시간에 따른 소요비용, 완벽을 추구하고자 하는 디렉터로서의 고뇌...

주연배우를 위해 1,400명을 오디션하며 흘렸을 땀과 선택의 갈등... 촬영시작 전날 여주인공
콘스탄체역으로 캐스팅 되어 모든 준비가 끝난 '맥 틸리'의 어처구니 없는 사고(길거리에서 축구하다)로
인한 발목부상으로 모든 스텝들을 체코에 놓아둔체 새로운 여주인공을 케스팅하기 위해 뉴욕으로 날아갔을
감독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실제 모짜르트가 '돈조반니'를 초연했던 극장에서의 촬영...그곳에서 각본을 맡은 'Peter Shaffer'는
감격에 겨워 복도에 숨어서 몰래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촬영도중 배우 모자 깃털에 불이 붙어, 그 유구한 유럽에서 하나밖에 않남았다는 목조 오페라하우스가 화재로
소실될 뻔 했을때, 감독은 얼마나 놀란가슴을 쓸어내렸을까요?
'눈'장면을 찍기위해 눈이 올때를 기다리며, 매일 눈올때 찍을것과 그렇지 않을때의 세트를 두가지
준비해야 했던 스텝들의 마음은 얼마나 조바심이 났을까요? 급기야 눈이 내리고 미국에서 다른영화 촬영중인
살리에리 하인역인 'Vincent Schiavelli'에게 연락하는 당시의 상황은... 그리고 이를 위해 모든 스케줄을
조정하고 단 한컷(살리에리에게 빵을 들고가는 씬)을 위해 미국에서 체코로 날아갔을 Vincent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실로 '아마데우스'라는 위대한 한 작품이 완성되기 까지...고뇌하는 순간 순간의 값어치는 인류
영상문화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기에 넘치고도 남음이 있는것이었습니다.

...

이 한편의 영화를 통해...
지금, 내가 서있는 한국의 디자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땅의 선배 디자이너들이 땀을 흘렸는가! 그들의 노고로 인해 우리가 지금
이렇게 디자인을 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이 터전이 과거 선배 디자이너들의 땀과 수고로 이루어졌음을 느꼈을때, 내가 전에는
도저히 알수도 느낄수도 없었던 과거 한국의 디자이너들에 대한 나의 편견에 대해 머리를 들 수
없을정도로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몰려왔습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수많은 땀이 뿌려졌고 그들의 노고가 내게로 이어지고 또 다음세대
디자이너로 이어지고...
과거 한국의 디자이너들에 대한 나의 태도를, 20년만에 다시본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분명 이 영화를 지금부터 20년후에 다시본다면 또다른 감흥으로 다가올것입니다.
그때는 20년전인 지금을 생각하겠지요...

우리가 지금 알고 느끼는것은 극히 '일부분(一部分)'에 지나지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두고두고 느끼게 될 삶의 한단면에 불과합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보고 느끼게 될 세상은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이미 경험했던 시간들이며,
여러분들이 후배들에게 물려줄 시간들입니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이 살아온 기간동안의 모든것들과 같이 '하모니'를 이루어
우리들에게 전해지는것입니다.

아마데우스의 감독인 Milos Forman은 이런말을 했습니다.
"감독은 모든것을 조금씩 해야돼요. 하지만 좋은 감독은 어떤일이든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골라야 해요."
이것이 또한 다음세대를 위한 준비요, 다음세대로 이어지는 통로(通路)인것입니다.
우리 선배디자이너들이 그렇게 우리들에게 기회를 주었듯이 우리도 다음세대의 후배디자이너들을
위해 기회를 줄것입니다.

지금 이순간, 우리 디자인을 위해 남모르는 땀을 흘리시고 말없이 사라져가신 선배님들과 지금도
우리 디자인을 위해 고뇌하고 뛰고 있을 우리 선배님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경의(敬意)를 표합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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